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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영성> 도입부

아래의 글은 연초에 제가 계획했던 <음악과 영성(가제)>이란 책의 소개 겸 도입부 형식으로 작성했던 글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음악과 영성을 다룬 책이 우리나라에는 전연 없어서 충분히 내볼만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몇번의 시도 끝에 아무래도 당분간 대한민국에서 이런 주제로 책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냥 버려두기는 아까워 제 블로그에나 올려둡니다. 언젠가는 빛을 볼 날이 오겠지요.


“다윗이 연주하여 주님을 기쁘게 했다는
비밀의 화음이 있다 들었네
이렇다더군: 4, 5,
마이너로 떨어뜨리고, 메이저로 들어올리고
실의에 빠진 왕은 할렐루야를 작곡하네

—레너드 코엔, <할렐루야>


음악에는 힘이있다. 특히 고대인들은 그 힘을 매우 경이롭게 여겼다. 우리에게는제프 버클리의 버전으로 잘 알려진 레너드 코엔의 <할렐루야>의첫 대목처럼, 음악은 신마저도 기쁘게 만드는 것이었으며, 여리고의성벽을 단박에 무너뜨린 막강한 위력의무기이기도 했다. 단지 히브리인들만 이렇게 생각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신묘한 리라 연주로 돌들을 움직여 성벽을 구축하였다는 암피온의 이야기가 있고, ‘잠자는 예언가에드가 케이시는 이집트의 피라미드와 영국의 스톤헨지가 노래의 힘으로 돌들을 부양시켜 건축되었다는 언급을 남긴바 있다. 비교적 최근인 1952년에는 한 스웨덴의 항공엔지니어가 티벳의 승려들이 인성人聲과 드럼, 트럼펫들을 사용하여6.3톤의 돌덩이를 250미터까지 들어올렸다는 기록을 상세한 도해와 함께 소개하기까지 했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우리들 또한 음악의 힘은 여실히 느끼고 있다. 어느 때고 자기 마음 속의 거문고를 공명시키는, 다시 말해 심금을울리는 노래 하나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다만, 오늘날음악은 길가의 상점에서 틀어대는 가요로,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흘려 보내는 뮤작muzak으로, 체육관에서 경쾌하게 쏘아대는 테크노 뽕짝의리듬으로 도처에 널려 있어, 분명 우리는 고대인들마냥 음악을 경이롭게 여기지는 않는다. 오늘날 음악은 너무 일상적이라, 우리는 종종 그 특수성을 간과하곤한다.


예술에서 아름다움의의미와 그것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등등은 오늘날 미학이라는 철학의 하위 분과에서 주로 논의된다. 미학의영역에서 음악의 지분은 매우 작아, 현대의 철학자들 중 음악을 심도있게 다룬 이는 아도르노 이외에 달리떠올릴 만한 이가 없다. 미학의 주주총회에서 음악이 언제나 들러리 취급을 받는 이유에는 우리가 간과하곤하는 그 특수성이 있고, 그 특수성으로 인하여 음악은 미학의 그리 길지 않은 역사 속에서도 숱한 오해와천시를 받아 왔다.


인간이 지각하는외부 세계의 정보 중 80%는 시각지각으로, 눈을 통해 수용된다. 이에 반해 음악은 순전히 귀를 통해서 수용된다. 이 사실을 염두에두면, 왜 미학의 논의에서 음악의 지분이 그토록 작은지를 이해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기술의 발전으로 음악을 일정한 형태로 붙잡아 두고, 동일한 품질로영구히 반복재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인지하는 정보의 80%가 시각정보라는 사실은 변함이없다. 오늘날 음악이 아무리 우리에게 가까이 있다 할지라도 여전히 음악은 우리에게 낯선 것이다.


음악에 대해서는추상적이라는 표현도 너무 추상적이라 이러한 표현만 가지고서는 음악의추상성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다. 인간의 사유는 상징, 보다정확히는 언어적 상징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심지어 무의식조차도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지않던가. 그에 반하여 음악은 언어적 속성을 갖고 있다. 음악에 있어서도 언어적인 속성이 있을 것이라는전제 하에 시도된 연구는 모두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1]심지어 음악은 언어적 속성을 갖고 있다는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2] 앞으로 신경현상학이 더 발달할수록 이 부분이 보다 분명히 규명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철학자들은이러한 추상성 때문에 음악을 두고 실체가 없고 공허한 것이라 평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추상성에서감정과 영성과의 특별한 관계를 발견하고, 실재reality의가장 내밀한 비밀을 들추어 내는 독특한 능력을 본 이들도 있었다.[3]그리하여 고대부터 음악은 (자연스레) 영성과연결되곤 했다. 중세의 유명한 연금술사 코넬리우스 아그리파는 음악이 망자의 혼을 불러오는 능력이 있다고도믿었다. 음악을 영성과 연계시켜 생각해 온 것은 일부 신비학자들만의 입장이 아니었다. 실상은 고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악인들이 음악을 통해 영성을 추구하여 왔다. 과장을 보태어 말하자면, 역사에 남은 어떠한 음악인의 이름을 대더라도나는 그와 영성 간의 연관성을 실타래만큼이나마 보여줄 수 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은 둘 다 프리메이슨과일루미나티 운동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고(또한 이는 그들의 작품 속에서도 드러난다), 말러 또한 당시 세기말 오스트리아를 휩쓸던 신지학의 열풍에서 예외가 아니었으며, 슈톡하우젠의 독특한 영성 추구는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거니와, 비틀즈의동양 영성에 대한 관심 또한 유명하다. 이 책의 목적은, 지금까지잘 소개가 되지 않았던 음악과 영성 사이의 풍부한 접점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데에 있다.


단지 음악뿐만이아니라, 예술에 있어서 영성은 언제나 풍부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특히 20세기 초의 모더니즘의 발흥에는 신비주의 사상의 영향이 매우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는 어느 한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조이스, 아르토, 콕토, 에른스트, 달리와 부뉴엘 등등, 문학, 연극, 미술, 영화 등의 모든 분과에서 그 사례를 목격할 수 있다. 실상 예술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그 작가들이 추구했던 영성 사상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며, 부박한 뉴에이지류 사상을 예술과 학문에 대한 천착으로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그렇다면 음악과영성을 연결하여 설명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음악과 음악인들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얻을 수 있다. 아름다운 음악은 듣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지만, 우린항상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궁금해 한다. 이는 다른 예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아름다운 영화,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을 때, 우리가 단순한 감상으로 만족하는 데에 그치던가? 그 작가는 누구이며또 다른 작품에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궁금해하지는 않던가? 이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예술 또한 인간의 정신활동의 일환이며 모든 정신활동에 대한 관심은 결국 인간으로 향하기 마련이다. 예술 또한 작가와 나의,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며 이 만남을 맺기전과 그 이후의 나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예술이 예술일 수 있는 이유는 그뿐이다.


또한 음악에 있어서영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부각시킴으로써 음악의 두 조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화해를 꾀할 수 있으리라는것이 나의 복안이기도 하다. (음악에 있어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구분은 대체로 문학과 미술 사조, 그리고 철학의 새로운 경향을 음악에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느낌이 강하지만,그런 만큼 논의에서 활용하기에 간편하기도 한데,) 일반적으로 모더니즘을 제2비엔나 악파의 대두 이후로 생겨난 경향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미니멀리스트의대두 이후에 생겨난 경향으로 보고 있다. 이 두 경향의 반목도 생각보다 두드러진 편이어서, 모더니즘의 적자라 할 수 있을 피에르 불레즈는 미니멀리즘에 대해한번 들으면 다 들은 게 되는 음악이라며 폄하하듯 발언한 적이 있고,유럽의종교적미니멀리스트의 기수인 존 태브너는인터뷰에서 쇤베르크 이후의 모더니즘 전통에 대해 매우 회의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보여줄 것이지만, 쇤베르크나 태브너나 그 (영성적인)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이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나면 쇤베르크와태브너의 뒤를 이을 우리들이 나아갈 방향 또한 보다 분명해질 것이라 믿는다. 내가 보기에는 대중음악의변방에 놓인 (변방에서 록이니 재즈니 하는 장르의 구분은 이미 무의미해졌다) 아방가르드 씬scene에서 이러한 경향이 조금씩보이고 있다.


애초에 음악에대한 논의 자체가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논의를 제기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만큼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바 또한 크다고 믿는다. 분명 우리나라에도 음악에 대해 보다 진지하고 폭넓은관심을 경주하는 이들은 있을 것이며, 이들에게 이 책은 틀림없이 흥미롭고, (감히 바라건대)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는 읽을거리가 될 수 있을것이다. 한편 영성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예술과 영성의 깊은 연결됨을 음미할수 있으리라.


해외에서도 음악과영성을 한데 묶어 다룬 사례는 그리 많지 않으나 최근까지 꾸준히 관련 서적이나 연구들이 나오고 있다. 가장최근에는 지난 3월에 이탈리아 미래파의 숨은 거장 루이지 루솔로와 신지학의 연관에 대해 다룬 서적이나와 내게 큰 기쁨과 도움을 주었다. 다만 해외에서도 이러한 연구는 대부분 우리가 흔히클래식이라고 부르는 클래시컬 예술음악classical art music에만 편중되어 있다. 프랑스의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아방가르드 재즈에 상당한 관심을 보이기는 했지만[4] 그 이후의 흐름에 대해서는 (내가 알기로) 별다른 논의가 없었다. 이 책의 또 다른 자랑거리라면, 7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의 대중음악 조류에서 영성이다루어진 사례에 대해서도 다루었다는 사실이다.


이 책에서는 음악과영성을 연결시킨 중요한 인물을 위주로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취할 것이다. 이들 가운데에는 순수하게 학문적인입장에서 (음악인으로서) 접근한 인물들도 있고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음악인들도 있다. 이책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각의 부분에서 다룰 내용은 아래와 같다:


1.     고대 ~ 바로크: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의 음악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여기서는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을 비롯한 고대의 현인들부터 케플러, 플러드, 키르허와 같은 중세 신비주의의 거장들이 음악에 대해 가졌던 관점들과 폰 빙엔을 비롯한 일부 작곡가들에 대해서도간략하게 다룰 것이다. 또한 이슬람과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신비주의 사상의 음악관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2.     고전 ~ 낭만주의 시대: 모차르트, 베토벤, 바그너등 신비주의에 깊이 경도되었던 작곡가들과 뉴턴, 파브르 돌리베를 비롯한 학자들의 이론을 소개할 것이다.

3.     20세기초: 세기말의비엔나와 러시아에 몰아친 신지학의 열풍은 음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말러, 쇤베르크를 비롯하여 모더니즘의 선구자들이 얼마나 신비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지를 집중적으로 조명할 것이다. 또한 신지학과 슈타이너, 그리고 구르지에프의 음악관을 소개할 것이다.

4.     20세기 중후반: 이른바재즈 시대의개막과 함께 본격적으로대중음악이라는 것이 전면에 부상한다. 대중음악과 영성의 관계, 그리고 대중음악의 아방가르드가 추구한 영성에대해서 조명할 것이다. 재즈에서는 콜트레인과 선 라, 아일러가그 문을 열었고, 히피와 비트닉의 시대를 지나 쓰로빙 그리슬과 함께 등장한 인더스트리얼 음악에서도 이를볼 수 있다. 90년대에는 북유럽에서 발흥한 블랙메탈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의 락 음악에서도 이교주의paganism와 악마주의를 표방한 (우리가 평소 의미하는바와는 거리가 있지만) 영성을 추구한 사례를 목격할 수 있다. 근래유럽에서 다시 부흥하고 있는 극우 세력 가운데는 에볼라Evola와 코드레아누Codreanu 등을 추종하는 네오포크 음악 씬도 포함되어있다. 또한 가장 통렬히 현대 사회를 비판한 에볼라가 음악을 통해 현대 사회를 진단한 사례와 근래의음악 논의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장을 제기한 아탈리의 음악관이 어떻게 영성과도 연계가 가능한지를 다룰 것이다.



[1] fact-check needed

[2] 스티븐 미슨,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참조

[3] 웨인 D. 보먼, <음악철학>, p.28 영문판 원문을 참조

[4] 데리다가 오네트 콜먼을 직접 인터뷰한 사례(97)도 있으며, 아탈리는 자신의 책 <Noise: The Political Economy of Music>에서프리 재즈 무브먼트를 중히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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