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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죽음 잡설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대학의 죽음'이라는 퍽이나 상징적인 표현은 세 가지 층위의 논의를 포괄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학교육을 이수한 자로서 늘상 갖고 있던 생각에 근래에 읽은 몇몇 기사들에 대한 단상이 겹쳐져 이 글을 쓴다.

1. 대학의 죽음: 대학과 인문학이 갖는 정치적, 사회적 함의

테리 이글턴이 가디언의 comment is free에 기고한 이 글은 오늘날의 대학이 현상 유지의 도구로 전락하였음을 지적한다. 이글턴은 인문학이 없는 대학은 술 없는 술집과 마찬가지라며 운을 떼고는 마가렛 대처 이후로 사회 비판의 중심부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대학들에게 '대학의 죽음'을 선고한다. '발달된 후기자본주의와 대학은 근본적으로 양립이 불가능하다.'

2. 상아탑의 지하실에서: 미국 대학의 현실

Professor X라는 가명을 쓰는 한 대학교 강사가 The Atlantic에 2008년에 기고하여 큰 화제를 불러 일으킨 글이다. 대학이 그저 고등학교와 직장 사이의 발판처럼 되어버린 현실을 바라보는 저자를 따라가다 보면 대한민국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미국을 모방했는지 느낄 수 있다. 도무지 이게 우리나라 이야기인지 미국 이야기인지 분간이 어렵다. 저자는 이 칼럼을 쓰고 나서 3년이 지난 올해에 같은 제목의 책을 냈다. 당시에는 많은 인신공격에 시달렸으나 그가 아틀란틱에 기고한 최근의 글은 이제 자신의 논의를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여견이 되었다고 판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물론 버블은 존재한다. 다만 인터넷이 아니라 고등교육에 있을 뿐: 대학 무용론과 대체재의 등장

우리에게는 PayPal의 창업자로 더 잘 알려진 Peter Thiel이라는 어느 헤지펀드의 대표가 근래에 20 under 20이라는 장학제도를 설립하면서 또다른 논란이 확산되었다. 티엘의 20 under 20 장학제도의 골자는 20세 이하의 뛰어난 청소년들에게 대학을 가는 대신 바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으로, 이러한 학생들에게 고등교육이란 그저 장애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 자신이 스탠포드에서 철학석사와 JD를 땄지만 그의 주장은 분명하다: "진정한 버블이란 과대평가되고 열렬하게 신봉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미국에서 아직까지도 유일하게 신봉되고 있는 것은 바로 교육일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주장은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고 Vivek Wadhwa(듀크大) 같은 이들은 즉각 반론을 내놓았다. 고등교육에 대한 논란에 대한 그의 기고문 제목("학생들이여, 그대는 마크 주커버그가 아니다. 그러니 학교를 계속 다니도록")이나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도 학위 이수를 권장하고 있다. 심지어 스티브 잡스도 대학에서의 교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같은 언급을 읽어보면 그 요지를 금방 알 수 있다. 또한 고등교육 무용론을 주장하는 피터 티엘이나 마크 애링턴(IT 관련 #1 매체 TechCrunch 창업자)이 모두 스탠포드에서 JD를 수료했다는 사실을 들추면서 무용론자들의 주장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질만도 하다. 누구라도 자신이 빌 게이츠나 마크 주커버그가 아닌 바에야 굳이 대학을 버리고 싶어하진 않을 것이다. 물론 대학교육의 막대한 비용에 대해서는 논외로 할 때의 이야기이지만. (참고로, 미국의 개인파산법에서는 학자금 대출은 면책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학교육의 막대한 비용은 여태껏 대학교육에 대한 대체재가 전무했기 때문에 가능하였다. 대학교육이란 단지 특정 지식의 학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학습만이라면 책을 읽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덧붙여 학점(GPA) 등의 평가 체계와 특정 대학에서 학위를 이수하였다는 꼬리표 등등은 대학교육의 대체재를 찾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런데 TechCrunch에 근래에 올라온 '고등교육의 시련'이란 기사는 대학교육을 시대에 뒤떨어진(obsolete) 것으로 만들지도 모를 새로운 가능성에 대해 논하고 있어 이 지리한 글의 말미에 소개하고자 한다. 실은 이 기사 때문에 이 글을 끄적이게 되었다.

고등교육 학위라는 것은 노동 시장에 보내는 긍정적인 신호이다. 마이클 스펜스라는 경제학자는 70년대에 내놓은 논문에서 노동시장에서의 신호 메카니즘에 대해 논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구직자의 학위(credential)가 특정 직업에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지 못하였더라도 채용 여부를 결정하는 데에 강력한 결정요소가 된다고 강조하였고 이 덕택에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하게 되었다. 이는 당장의 필요 지식보다는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에 역점을 두고 인력을 채용하게 되며, 대학의 학위가 그 가능성에 대한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을 반영한 것이리라.

문제는 학위를 따는 데의 가격은 계속 급등하고 있는 데 반해 실제로 무언가를 배우는 데 드는 비용은 급감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온라인으로 대학교육을 수강할 수 있는 MIT의 OpenCourseWareiTunes U는 물론이고, 국내 언론에도 소개된 적 있는 Khan Acedemy도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사이버 대학들은 이와 전혀 다른, 온라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학과 비등한 등록금을 요구하는, 그야말로 완전히 미쳐버린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이를 설명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 같다. 그만큼 대학 '간판'에 거는 것이 많다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교육에 드는 비용이 급증하고 있는(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지가 되고 있는) 이유는 아마도 현재까지도 대학이 노동시장에 보내는 신호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바꾸어 말해, "저는 이런 책을 읽었고 저런 책도 읽었으며 이것도 배우고 저것도 배웠으며..." 하는 설명과 "저는 쥐통령님의 직속 후배로서 학점은 4점대이고..."하는 설명이 갖는 차이는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잘 알고 있다. 대학 간판이나 학점, 토익 점수가 실제 업무 능력 등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것을.

노동시장이 찾는 인재를 위한 신호의 문제점은 측정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데에 있다. 그나마 연관이 있을 실낱같은 '가능성'과 기존에 확립된 체계로서의 권위가 이를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만약에 이를 평가할 더 좋은 방법이 존재한다면? TechCrunch의 이 기사는 바로 이점에서 무척 재미있는 시사점을 제공한다. '측정가능한 새로운 신호 체계'가 발흥하고 있다는 것. 바로 명성reputation이다. 일부 업계에서는 이미 Github나 Dribble 같은 소셜 네트워크에서 명성이 높은 엔지니어나 디자이너를 채용하고 있다고 한다. Quora와 Twitter도 종종 사용되고 있다고 하고.

이 기사를 작성한 Jon Bischke는 올해 초에 자신의 블로그에 명성 그래프에 대한 글을 썼다: 우리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이런 저런 평가를 은연중에도 끊임없이 내리고 있다. 만약에 우리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롤링페이퍼 식으로 급우들 중 '가장 성공할 것 같은 사람'들을 각자 적도록 하고 그 결과를 모아두었다고 수십년이 지난 후에 비교하여 보면 어떨까? 아마도 대학교니 학점이니 하는 척도보다 훨씬 높은 정확도를 보여줄 것이다. 만약에 이를 데이터화하여 보관하고 비교할 수 있는 네트워크가 태어난다면 그야말로 엄청난 기회가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무척 음울한 미래가 그려질수도 있겠지만, 이는 앞으로 IT가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에 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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